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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장애인의 아픔을 안다는 오류

  • 관리자
  • 2018-02-28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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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자만이 배고픈 자의 아픔을 안다. 이것은 진정 당연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지식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배고픈 자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배부른 자인 국회의원이

가장 배고픈 서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 사회는 꾸며져 있다. 지금 이 세상에는 배고픈 자보다 그렇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기에 아무리 너희들이 배고픈 우리의 심정을 어떻게 아느냐고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지금 장애인을 대변하는 단체들의 장들은 배고픔을 아느냐고 물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예전에 배가 고파 봤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기에 아련한 추억만으로 지금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고통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그 당치도 않는 자신감이 이 세상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장애인계 단체장들의 당사자 의미도 어느 지역에서 살았기에 그 지역의 고통을 다 같이 통감한다고 부르짖는 지역구

의원들과 같다.

장애라는 탈을 썼을 뿐 장애인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그들이 너무나 많다. 서로 수고 많다고 부추겨 세우고 감싸고도는

장애단체의 세계에서 진정 가난한 장애인의 배고픔은 깊어 간다.

사회복지사라는 감시자가 득실대는 체제는 장애인을 더욱 장애인으로 만들기에 바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게

짓밟고 있다. 스스로 걷고 목표지점에 갈 수가 있어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휠체어에 태워 밀고 가려는 사회복지사들은

그것이 봉사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의 역할에 충실한 장애인이 많아야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자립한 장애인보다 아무리해도

자립 못 하는 장애인이 더 많아야 한다.

장애인 복지사업은 이제 아주 큰 먹이 감이 됐다. 따뜻한 사무실과 집에서 어떻게 밖과 같은 집과 거리에서 헤매는 장애인의

아픔을 알 수 있다는 것인가? 나도 잊고 살고 있다. 나는 장애인이면서 사회복지사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생활을 하기 위해 일을 할 뿐이다.

장애인은 일거리를 위한 재료일 뿐이다. 가끔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나는 장애인을 이용할 뿐 너희를 위해

일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서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과 같은 장애인 단체장과 사회복지사들이 너무도 많다. 오히려 단체장들과 사회복지사들은

봉사라 생각 않고 업무에 충실한 공무원과 같은 태도를 보여라.

봉사자라는 의미에 고개를 못 드는 공무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회복지 공무원이라 불러달라고 외쳐라! 복지는 특정인의

봉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은 봉사 받는 대상이 아니다. 그냥 불편할 뿐이고 아플 뿐이다. 불편함을 해소할 편의시설과 시스템, 고통을 치료받을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돈이 필요할 뿐이다.

진정한 봉사자는 같은 장애인도 사회복지사도 아닌 가족이고 이웃이고 돈이다. 공무원이 주면 당연한 수당이고 연금이지만

단체장이나 사회복지사를 통해 받으면 후원금이 되는 것이다. 작은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할 작은 돈만 있어도 누구에게나

받을 수 있는 봉사다. 장애인 단체, 사회복지사 그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은 울산광역시에 사는 김희철 님이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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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희철 (khc71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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